대한검정회 대사범... 각력지희(角力之戱), 조선의 단오 씨름을 엿보다

2025. 5. 2. 10:08대한검정회한자익히기/대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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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소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는 조선 후기 홍석모(洪錫謨, 1781~1857)가 정월부터 12월까지 윤달을 포함한 일 년간의 세시풍속을 집대성한 기록물이다. 호는 도애(陶厓)이며, 벼슬을 그만두고 팔도를 두루 여행하며 수집한 민간 세시와 놀이 풍속을 정리한 이 책은, 중국의 『세시잡기』·『형초세시기』 등 영향 아래 내용이 풍부하게 첨가되고 보완된 한국의 대표적인 세시지로 평가된다. 편찬자 홍석모는 조선의 관료이자 풍속기록가로, 젊은 시절부터 전국을 유람하며 각 지방의 사례를 취재했다. 그 결과 이 책에는 우리 국토 전역의 풍습이 다양하게 담기게 되었다.

원문, 독음, 해석


원문: 丁壯年少者 會於南山之倭場이나 北山之神武門後하여 爲角力之戲하여 以賭勝負라。

독음: 정장년 소자 회어 남산지 와장이나 북산지 신무문후하여 위 각력지 희하여 이도승부라.

해석: 의젓한 청년과 어린이들이 남산 밑의 *왜장(倭場)*이나 북악산 신무문 뒷편에 모여 씨름(角力)의 놀이를 하며 내기로 승부를 겨룬다.


원문: 其法은 兩人對跪하고 各用右手하여 拏對者之腰하고 又各用左手하여 拏對者之右股하고 一時起立하여 互舉而抨之하니 倒臥者為負라。

독음: 기법은 양인 대궐하고 각용 우수하여 나대자지 요하고 우각용 좌수하여 나대자지 우고하고 일시 기립하여 호거이 팽지하니 도와자 위부라.

해석: 그 방식은 두 사람이 서로 맞무릎 꿇고 앉아 오른손으로 상대의 허리를 잡고 왼손으로 상대의 오른쪽 허벅지를 잡은 뒤, 동시에 일어나 서로를 들어 올려 내리친다. 그리하여 아래에 깔려 넘어지는 사람이 지는 것이다.


원문: 有內句外句輪起諸勢하니 就中力大手快하여 屢賭屢捷者를 謂之都結局이라.

독음: 유내구 외구 윤기 제세하니 취중 역대 수쾌하여 누도 누첩자를 위지 도결국이라.

해석: ‘안다리걸기(內句)·밭다리걸기(外句)·둘배지기(輪起)’ 등의 여러 기술 자세가 있고, 그 중 힘이 크고 손이 빠르며 여러 판을 거듭 내기해 자주 이기는 사람을 ‘도결국(都結局)’이라 부른다.

주요 어휘 풀이


角力(각력): 씨름(摔跤)。에 따르면, 『동국세시기』에도 남산과 북악산에서 *각력(씨름)*이 행해졌다고 전해진다. 즉 이 구절의 “角力之戲”는 “씨름놀이”를 가리킨다.

戱(희): ‘놀이’나 ‘경기’라는 뜻의 한자어. 앞뒤 어구와 함께 ‘…之戲’ 형태로 쓰여 ‘…하는 놀이’라고 해석된다.

賭(도): 내기하다, 걸다. 여기서는 승부를 내기 위해 도박하듯 돈이나 물건을 건다. 以賭勝負는 ‘내기로 승부를 가른다’는 뜻이다.

對跪(대궐): 서로 마주보고 무릎을 꿇음. 씨름에서 경기 시작 자세로, 두 사람이 마주보고 앉은 상태를 말한다.

拏(나): 잡다, 붙잡다. 우수(右手)로 “對者之腰(상대의 허리)”를 拏하니 ‘상대의 허리 를 잡다’이다.

右股(우고): 오른쪽 허벅지(다리). 뒤 문장에 “拏對者之右股”가 있어, 상대의 오른쪽 허벅지를 잡는다는 뜻이다.

抨(팽): 격렬히 내던지다. 여기서는 상대를 번쩍 들어 공중으로 던져버리는 동작을 가리킨다. 실제로 현대 우리말 씨름 용어로 ‘팽(打同으로 쓰기도 함)’이라 한다.

倒臥者(도와자): ‘뒤집혀 쓰러진 자’로, 이기지 못하고 넘어지는 사람. 뒤에 “為負”라 하여 ‘넘어진 사람이 패배자’임을 밝힌다.

內句(내구)·外句(외구)·輪起(윤기): 각각 씨름 기술이름이다. 조선 후기 씨름 기록에 따르면, 內句(안다리걸기)와外句(밭다리걸기)는 상대의 다리를 걸어 넘기는 기술이고, 輪起(들배지기)는 상대를 허리춤으로 안아올려 돌려 던지는 기술이다. 이와 같이 『동국세시기』는 단오 씨름의 주요 기술로 내구·외구·윤기 등을 소개한다.

都結局(도결국): 여러 판을 모두 석권한 최종 승자를 의미한다. 명칭의 어원대로 직역하면 ‘판을 모두(都) 매듭(結)지은 사람(局)’인데, 즉 결승에서 이겨 대회 우승자가 된 자를 이른다. (현대의 씨름에서는 ‘장사(壯士)’나 ‘천하장사’와 같은 개념이다.)


어법 설명


본문은 한문 기저 위에 한국어 문법 요소를 끼워 쓴 전근대적 문체로, 한자어와 한국어 조사가 섞여 있다.
예를 들어, “其法은”에서 其는 ‘그(의)’이고, 뒤의 한국어 조사 ‘은’은 주격을 나타낸다.
“兩人對跪하고 各用右手하여 … 一時起立하여 … 抨之하니 倒臥者爲負라”와 같이 동작이 연결될 때는 “…하고, …하고, 일시에 …하고, …하니 …라” 등의 형태로 중국어의 접속(而, 而後 等)이 한국어 어미 ‘-하니’, ‘-라’ 등으로 표현되었다. 특히 “者를 謂之 都結局” 구절에서는 앞의 劣勝者를 가리키는 ‘者’를 주격으로 삼아 “那人(者)을 都結局라 부른다”는 의미 연결을 이루고 있다.

또한, 부사어 “各(각)”과 “又(우)”가 동작의 반복을 나타내고, “一時(일시)”는 ‘동시에’라는 뜻으로 쓰였다.
‘~者為負라’ 구문은 “~한 사람이 패배자이다”로 해석된다.
전반적으로 각 한자 어구의 기본 의미에 한국어 어미·조사가 더해져 문장마다 주술(主述)과 부술(附述)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관련 고사성어 연결

이 구절의 싸움과 경쟁 정신은 고전의 사자성어에서도 유사하게 표현된다.
예를 들어, **爭強好勝(쟁강호승)**이라는 사자성어는 ‘남과 겨루어 늘 우위에 서고자 한다’는 뜻으로, 강한 자들끼리 승패를 겨루는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힘을 자랑하지 않고 기회를 살피라는 교훈으로는 **韜光養晦(도광양회)**가 있는데, 이는 ‘빛을 감추고 어두워지길 기다린다’는 뜻으로 강한 힘을 곧장 드러내기보다는 때를 기다리라는 의미로 쓰인다.
비록 해당 구절에서는 오히려 힘을 과시하는 놀이지만, 대비해 보면 경쟁의 본질과 전략을 생각해볼 수 있다.

현대사회와의 접목


이처럼 전통적으로 단오절에 젊은이들이 씨름으로 실력을 겨뤘던 풍속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동국세시기』에 언급된 대로 조선 시대 한양의 남산·북악산에서도 씨름이 행해졌다고 전해지는데, 현대에는 전국 규모의 씨름 대회가 개최되어 수천 명의 관중이 몰리기도 한다. 실제로 최근 씨름 방송에서도 “민속씨름대회”가 수많은 팬을 모으며 열띤 응원을 받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옛 풍습이 스포츠 문화로 승화한 사례다. 올림픽 레슬링이나 세계의 전통 씨름(예: 몽골 부흐 등)과 마찬가지로, 체력과 기량을 겨루는 이 놀이는 현대인의 스포츠 정신과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다만 본문의 ‘賭勝負’처럼 결과에 돈을 걸던 관행은 오늘날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공정한 스포츠맨십과 안전 규칙이 강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부를 향한 투지는 여전히 경쟁의 열정으로 남아 각 분야에서 재현되고 있다.

출처: 홍석모, 『동국세시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단오, 동국세시기), 국립민속박물관 웹진(씨름 기록), 교육부 사자성어사전(爭強好勝) 등.


오늘의 문장은 씨름이다.
쉬운 문장이기에 더욱 자료를 세밀하게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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